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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 횡성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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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3.1운동 기념비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02.21
조회수 889 등록 IP 14.54.x.139
3.1운동 기념비 3.1운동 기념비
횡성 3ㆍ1운동은 강원권 3ㆍ1운동에서 어느 지역보다도 거센 만세시위가 있었다. 횡성지방은 천도교(天道敎)에 의해서 만세운동이 추진되었는데, 당시 횡성천도교회 도훈(道訓)이면서 서울천도교 본부에서 일하고 있던 이채일(李采一)과 의사원(議事員)이던 이동구(李東求)에 의해서 독립선언서가 전해졌다. 독립선언서는 최종하(천도교 교구장)ㆍ신재근ㆍ장동훈이 협의하여 서울에서 이동구를 만나 선언서와 태극기를 구한 다음 3월 11일에 가져와 3월 12일과 14일에 배부했다. 첫번째 만세운동은 3월 27일(음력 2월 26일 장날)에 전개되었는데, 이 날 전개된 독립운동은 독립선언서에서 밝힌대로 평화적 시위였다. 횡성읍내 시장에 약 300여명이 모여 태극기를 세우고 시위를 전개하였는데 8명이 체포되었다.
4월 1일에는 횡성읍 청년 윤태환(尹泰煥)과 감리교회의 정해경(鄭海景)이 가담하여 더 많은 주민을 모아 1천 300여명(일본 보고자료)의 군중이 장터에서 만세를 외쳤다. 처음부터 무차별 무력진압을 목표로 했던 일본 경찰의 발포로 하영현, 강달회, 전한국, 강성순 의사는 현장에서, 강만형 의사는 옥중에서 왜적의 총칼에 순국하였다. 이 운동은 강원특별자치도내 최초의 운동으로 양양(4월3일), 평창 (4월 4일)보다 앞섰다. 이어 2일에도 해산하지 않은 군중 200여명이 헌병분견소에 모여 독립운동의 허가 및 체포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하였고, 4월 7일까지 시장을 철시하고 태극기를 게양하고 격문을 붙이는 등 시위가 도내에서 가장 치열했던 장기간 만세운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횡성의 3ㆍ1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3ㆍ1운동 기념비는 횡성읍 읍하리 40번지 3ㆍ1공원에 있다. 동아일보사가 창간 50주년 기념사업으로 3ㆍ1운동 기념비 횡성군협찬회와 공동으로 1972년 8월 15일에 건립하였다. 기념비는 비석 1기와 횃불을 든 조각 1기로 되어 있다. 글은 이희승(李熙昇), 글씨는 서희환(徐喜煥), 조각은 김영중(金泳仲)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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