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우천면 우항리 20번지에 소재한다. 1950년 한국전쟁중 UN군의 16개국 중 한나라인 네덜란드 육군은 불의를 용서치 못하는 오랜지공의 후예답게 해군과 함께 해상작전을 전개하였고, 육군은 특히 1950년 11월 13일부터 1954년 2월 15일까지 횡성, 원주, 양구, 금화지구 등의 강원지구전투에 참전하여..
횡성 3ㆍ1운동은 강원권 3ㆍ1운동에서 어느 지역보다도 거센 만세시위가 있었다. 횡성지방은 천도교(天道敎)에 의해서 만세운동이 추진되었는데, 당시 횡성천도교회 도훈(道訓)이면서 서울천도교 본부에서 일하고 있던 이채일(李采一)과 의사원(議事員)이던 이동구(李東求)에 의해서 독립선언서가 전해졌다. 독립선언서는..
3.1운동 기념비 바로 옆에 건립되었으며 3.1운동 기념비가 민간 주도형이었다면 횡성군민 만세운동 기념비는 문화공보부의 독립운동 유적지 보존 계획에 따라 문화재 관리국이 대상지를 엄선하여 건립토록 한 것으로 국비를 보조받아 횡성군수가 주관이 된, 즉 정부가 공인하는 3.1운동 유적지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충혼탑(읍하리 3.1공원 내)은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에서 조국의 평화를 지키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장렬하게 산화하신 횡성 출신 군, 경, 민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호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1968년 6월 6일 건립 《 충혼탑의 제자(題字)는 1968년 6월 6일 박정희 대통령이 씀》하였으나 규모가 작고 훼손..
여사께서는 1878년 10월 15일 경주읍 서부리 김해김씨 문중에서 태어났다. 1898년 10월 19일 안흥면 안흥리에서 박영화 씨와 결혼하여 횡성읍 한치고개 (옥동리와 갑천면 구방리)를 거점으로 가난과 세파에 시달리면서 애국의 일념으로 생활하시다가 1952년 12월 19일 한 많은 삶을 마치셨다. 기골이 장대한 여사(일명 황..
1876년 4월 2일 횡성군 우천면 문암리에서 부농 ( 富農 ) 의 아들로 태어나 최인순 , 강도영 등과 함께 약 400 ∼ 500여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1907년 8월 횡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홍천, 원주, 평창, 영월 등지에서 무려 500여회에 걸친 일본군과의 대전에서 전과를 올렸다. 1908년 2월에는 홍천에서 일본군 대부대를 격..
자는 길준(吉俊)이고, 호는 추강(秋岡)이다.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갑천면(甲川面) 화전리(花田里)에서 1893년 출생하고 1913년 4월 원주보통학교(原州普通學敎)에 입학하여 1917년 동교를 졸업하였다. 1917년 3월에 서울 중동중학교(中東中學校)에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민족정신과 항일사상이..
1907년 조선군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고종황제를 폐위한 일제의 만행에 분노를 금치 못하며 의병으로 봉기 한 분들중 이지역 전투에서 순국하신 세분의 무연고 의병을 모신 묘역이다. 1907년 11월에서 12월 까지 이 곳 서원면에는 700여 의병이 대부대를 이루고 일본군 보병 제 51연대와 대치하던 강원, 경기, 충청도 의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