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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횡천(橫川)이라 부름
1389년「공양왕 원년」감무(監務)를 설치함

 
고려시대에는 횡성의 이름은 예전대로 횡천(橫川)이라고 하였으나『삼국사기』에는 「경덕왕개명 금복고(景德王改名 今復古)」라고 하여 옛이름을 복구하였다고 하나 이 기록만으로는 『삼국사기』편찬 당시에 다시 복구하였다는 것인지 고려성립 초기에 횡천이라는 고구려의 지명으로 복구하였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조선조 고종(高宗) 1년(1864년)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 의하면 태조(太祖) 23년(940년)에 횡천으로 고쳤다고 하는데, 『고려사(高麗史)』 태조 23년 기사에 「주. 부. 군. 현의 명칭을 고쳤다.」라고 하는 것을 보아 김정호의 기록은 정확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고려시대에 와서 횡천이란 명칭은 이때부터 고려시대 끝까지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때에는 강원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지방행정이 일관적인 질서를 잃고 있어서 기록이 책마다 동일하지 않고, 또 하나의 책에서도 일관성을 잃고 있다. 따라서 횡성의 연혁을 밝히는 데도 확실한 연대를 명시하여 기술하지 못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고려의 초기ㆍ중기ㆍ말기로 3단계로 나누어 조명해 보고자 한다.
   
고려 초기에는 전국을 16도로 나누어 구획했는데, 이 때에 강원도는 함경도 남부와 더불어 삭방도(朔方道)라 하였으며 횡성은 삭방도 춘주(朔方道 春州)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중기에 이르러 전국을 5도 양계(5道 兩界)로 구획할 때에는 강원도를 세토막으로 나누어 영동지방을 동계(東界)로, 영서지방을 북부는 교주도(交州道), 혹은 동주도ㆍ춘주도(東州道ㆍ春州道)로, 남부는 양광도(楊廣道)로 불렀으며 경기ㆍ충청ㆍ강원도의 영서지방을 통합한 것이다. 이 때에 횡성은 처음에는 교주도의 춘주에 속해 있다가 양광도에 속한 원주의 관할이 되었다.
고려 말기에는 동계에 속해 있던 영동지방에 강릉도(江陵道)가 생겨 나더니 영서북부의 교주도와 합쳐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가 되었고 횡성(橫川)은 공양왕 원년(恭讓王 元年)인 1389년에 감무(監務)를 설치하여 독립하였으며, 양광도에서 교주강릉도로 그 소속이 이관되었다.
특히 횡성은 고려시대에 거란(契丹)의 유족이 세운 요(遼)나라의 침입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이 침입은 고려 고종(高宗) 3년인 1216년까지 계속되었는데, 원주까지 침입한 거란병은 그곳에서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횡성으로 패퇴하여 주둔하였다가 다시 원주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후에 이들은 최원세(崔元世),김취려(金就礪)장군의 부대에게 패하여 대관령을 넘어 도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