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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 횡성의 문화재
전통있는 횡성인의 기상을 정립하는 횡성문화원
유형문화재
태종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02.21
조회수 2105 등록 IP 14.54.x.139
태종대
횡성군 강림면 강림2리에 있는 태종대(太宗臺)는 조선 태종과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과 관계되는 유적으로, 문화재자료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원천석은 고려 때 좌명공신(佐命功臣)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역임한 원경(元鏡)의 19대 손이며 충숙왕 17년에 종부사령(宗簿司令)을 지낸 윤적(允迪)의 둘째 아들로 원주 원씨의 중시조이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조 태조의 왕가 형제간의 살육을 통탄하며 분노를 느낀 나머지 관직을 거부하고 개성(開城)을 떠나 이곳 강림리에 은거하였다. 그는 고려왕정(高麗王政) 복고를 위하여 반기를 든 두문동(杜門洞) 72인의 한 사람이며 이양소(李陽昭),남을진(南乙珍),서견(徐甄)과 더불어 고려 사처사(四處士) 중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원주시 행구동 석경촌(石逕村)에 그의 묘소가 있고 칠봉서원(七峰書院)에 배향되었다.
이방원이 조선조 3대 태종으로 등극하여 왕위에 오르기 전에 스승으로 섬겼던 운곡 원천석을 찾아 다시 관직에 앉히고 정사(政事)를 의논하고자 이곳을 찾았으나, 원천석은 태종이 이곳에 오는 것을 미리 알고 태종과의 만남을 꺼려 피신하여 치악산으로 들어가면서 개울에서 빨래하는 노파에게 자신의 행선지를 거짓으로 알리고 골짜기로 들어갔다. 태종이 이곳에 도착하여 빨래하는 노파에게 운곡이 간 곳을 물었으나 노파는 원천석이 일러 준대로 거짓으로 가르쳐 주었다. 태종은 그곳으로 가서 스승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이 바위에서 기다리다 스승이 자신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후 태종이 운곡을 기다리며 머물렀다 하여 뒤에 이곳을 ‘태종대’라 하였으며 ‘주필대(駐蹕臺)’라는 비석을 세워 누각안에 보호하고 있다. 태종대 아래의 기암절벽에는 다음과 같이 각자(刻字)되어 있다.
先生事蹟略記弁岩太宗臺太宗王訪耘谷元先生自覺林避入弁岩上駐輦于此官其子賞其婢而返篤後人因以名之崇禎後八十年癸卯夏刻
운곡 원천석과 관련된 사적은 다음과 같다.
<변암(弁岩, 고깔바위)>
강림면 부곡리에 있는데 운곡 원천석 선생이 은둔생활을 하였다고 전하는 굴바위이다. 부곡리 치악산 기슭 비로봉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300m쯤 아래에 있는데 생긴 모습이 고깔처럼 생겼다고 하여 ‘변암(弁岩)’이라고 불리운다. 바위 아래에는 수십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고, 그 옆에는 돌우물이 있어 사시사철 물이 끊이지 않는다. 원천석 선생은 이곳에 온돌을 만들고 고사리와 나무 열매로 식사를 대신하였다고 전해진다. 변암 안쪽 벽면에는 ‘변암(弁岩)’이란 두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옆으로는 ‘太宗□東二十里’라는 문구가 있다. 또 바깥 벽면에는 ‘開穿石井常?湯 收拾山蔬且慰貧’이라는 시구(詩句)가 있고, 옆쪽 바위 아래면에도 “耘谷元先生諱天錫麗末隱居此山下我太宗以甘盤舊恩累召不至幸其盧先生避入于此崇禎後八十年癸卯後孫尙中識不□上高其義”라고 새겨져 있다.
<횡지암(橫指岩)>
강림면 부곡리에 있다. 구연(軀淵)에서 올라와 태종대를 지나 서북쪽 산골짜기에 있는 곳으로 노구(老軀)가 선생이 변암으로 가신 줄 알면서 이쪽을 가리켰다고 하여 ‘횡지암(橫指岩)’이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또한 이방원이 원천석을 만나지 못하고 되돌아간 후 제자인 이방원이 포악무도하게 정권을 탈취한 것은 자신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한탄한데서 유래했다하여 빗길 횡(橫)자와 가르칠 지(智)를 써서 횡지암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노구소(老軀沼)>
강림면 강림리에 있다. 운곡 원천석 선생이 태종의 행차를 미리 알고 강가에서 빨래하던 노구(老軀)에게 ‘손님이 와서 나의 간 곳을 묻거든 이 강물을 따라 갔다’고 대답하라고 부탁하고 사실은 은거하던 변암쪽인 좌측으로 꺾어져 올라 갔다. 노구는 운곡이 부탁하던 대로 태종에게 가리켜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태종의 거둥이라 임금을 속였음을 알고 그대로 강물에 투신자살하니 이곳을 ‘구연(軀淵)’이라고 불러왔다.
<누졸재>
강림면 부곡리 태화동에 있다. 변암(弁岩)으로 오르는 길목 작은 산등성이에 ‘운곡원선생유지(耘谷元先生遺址)’라는 비석이 있는데, 현재 이곳을 ‘누졸재지(陋拙齋址)’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석 동쪽 구릉으로 50~60m 지점에 1.5평 정도의 정방형 움막이 있어 이 곳이 누졸재터로 추정되고 있다. 온돌형식과 화장실터가 남아 있고 움막 앞뒤에 텃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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